아내의 생일에 대처하는 법 Life



얼음집을 통해서 내 소개 한번 한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용기를 한번 내어볼까 한다.

지극히 일반적인 30대 직장인으로, 불황의 경기에 풍전등화와도 같은 9년차 사무직이다.
부산 지역의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입사, 입사 후 단 3개월 만에 결혼하여 이듬해에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까지 가지게 되었기에 일반적인 인생의 흐름 보다는 꽤나 빠른 길을 걷고 있다고 자평한다.

나 보다 몇살 많은 와이프 덕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허름하지만 내집을 가질 수 있었고,
이후 주식마귀에게 5천만원을 헌납하는 대풍파를 겪었지만 그나마 와이프가 마련한 신혼집 덕택에 하우스푸어 가장으로서나마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10여년을 회사생활을 하다가 나와 결혼하며 바통을 터치했는데 벌써 내가 직장생활 한지도 얼추 10년이 되어가니, 세월이 빠르다는 말 밖에는......


연봉이 4천이든 7천이든 기본 재산 없이는 생활이 팍팍할 수 밖에 없다.
미친 주택 가격을 생각하면 그 누구라도 빚 없이는 가정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작금의 사태다.

월급 몇백 받아 봐야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하고 카드값 나가고 공과금에 자동차세 보험료 등등 제하고 나면 무엇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할지 한숨을 쉴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거기에 이런저런 대소사에 따른 경조금 까지 생각하면....

누군가 생일이라도 맞이하면 어찌 그리 마음이 무거운지 :-)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서른 몇번째인지는 본인이 기억해주길 원하는 것 같지는 않고 :-)

글쎄 연인관계라면 조금 과분한 선물을바라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부관계에선 그게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한정된 수입으로 아웅다웅 살아가는것을 서로 뼈저리게 잘 알고 있기에 생일만 다가오면 뭐 할 생각 하지 마’, ‘생일 선물은 필요 없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인다.


굳이 사 먹을 필요성이 없는 시판 케익은 당연히 배척의 대상이 되는 것. 고맙게도 이번엔내 동생의 처이자 와이프의 동서가 투썸 기프티콘을 보내주어서 생일 기분 미리 내어 보았다.





꼬맹이 생일 때 처럼,크리스마스 때 처럼 케익이라도 만들고 지나가면 좋을텐데,


애써 무던한 척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그녀의 말에 내마음 한켠이 시리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우리 삶에 약간의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뒷바침이 되었다면 어땠을까싶은 마음도 있다.

 



아마도 결혼 직후, 처음맞은 내 생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생일을 맞기 전 주말에 처갓집 식구들과 미리 외식으로축하를 받고, 당일에는 야근 후에 늦은 밤 퇴근을 했었다.

 

뭐 먹고 싶은 것 없냐는 아내의 물음에 나는 왠지 심통이나서 너구리나 하나 끓여달라고 했었고,

맛있게 끓여낸 너구리를 한 젓가락 입에 넣었더니 그냥 눈물이 났다. 어이없게도 그렇게울고 말았는데 그 후부터 매년 생일날 마다 너구리로 놀림을받게 되었다.

 

계속해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눈물샘이 말라 붙었는지 좀처럼 눈물을 흘일 일이 없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순진하고 풋풋한 것 같아서 좀 우습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사건을 겪은 이후로 매해 아내의 생일 때 마다 작은선물이나 꽃다발이라도 준비하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그녀도 느낄까봐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시기적으로 물질적 빈곤상태가 극에 달해선물도 꽃다발도 준비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사정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아내도 선수를 친다.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 없다고.




왠지 허전했다. 그래서퇴근길에 딸기 한 바구니와, 미역국 끓일 참치캔 하나, 얄궂은반찬 거리 몇 개를 샀다.







평소에 일어나는 6시보다 한 시간을 당겨서 알람을 맞추어 놓고 일어나니 아직까지 새벽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을만큼 깜깜하다.


달그락 소리날까 조심조심 몸을 움직여 참치캔 넣고 미역국을끓였다.







그리고 생일 상이 허전할까 불고기도 조금 재웠다.






첨가제 덩어리 불량식품이라지만 가끔인데 뭐 어떨까 싶어명엽채도 고추장 양념에 볶아 반찬통에 넣어 두었다.


찹쌀밥에 생선 한 마리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이 정도로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뜬금없지만, 난스스로를 본격 무신론자라 여긴다.

 

눈 없이는 볼 수 없고,귀 없이는 들을 수 없고, 코 없이는 냄새를, 혀가없으면 맛을 볼 수 없다.

손 없이는 만질 수 없고 다리가 없이는 걸을 수 없다는것, 육체와 뇌의 기능이 정지하는 순간까지가 내가 영위할 수 있는 삶이다.

 

그 이후의 일은 궁금하지도 않고 그것을 위해 내 삶의일부를 헌신할 생각도 없다.

설사 불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고통을 느낄 육신이 없다니 꽤나 편리한 생각이다.

 

 

살아있는 동안,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맛있는것을 먹고, 이 지구라는 행성 곳곳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지만,

나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생명들과 사랑하며 함께하는 것이내게 주어진 삶의 목적이라 믿는다.

 

팍팍하지만 이 모든걸 느낄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함을 나의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어 더 아름다운 삶이라 생각한다.

 

자그마한 내용물을 과대 포장에 담아 질소를 가득채운 느낌이지만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한 마디.

 


생일 축하해, 마음 뿐이라 미안해

 











핑백

  • A Little Bit Self-Conscious : 주섬주섬 2020-01-17 13:05:38 #

    ... 참치미역국을 시작으로, 슴슴하게 양념해서 구워낸 한우 불고기를 센터에 두었구요,팽이버섯전, 일미무침을 좌청룡 우백호로 모셔 놓고 생일 축하를 전했습니다. http://cookeng.egloos.com/4177572 그러고 보니 5년 전 이맘때에도 비슷한 글을 썼었나봐요.오그라들기는 하지만 그 당시의 제 감정이 어땠는지 그대로 전해져서 왠지 코끝이 시큰하네요. ... more

덧글

  • 따뜻한 허스키 2015/02/10 13:04 # 답글

    ㅎㅎㅎㅎ멋지세용*.*
  • 쿠켕 2015/02/10 21:45 #

    써놓고 보니 많이 부끄럽네요. 속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ㅎ
  • 2015/02/10 14: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0 21: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코양이 2015/02/10 15:01 # 답글

    주식마귀....
  • 쿠켕 2015/02/10 21:55 #

    다시는 쳐다도 안봐요...
  • kaze 2015/02/10 16:25 # 답글

    덤덤한 듯 묵직하게 찡하네요. 멀리서나마 아내분 생신 축하드립니다.
  • 쿠켕 2015/02/10 21:55 #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Karen 2015/02/10 16:47 # 답글

    준비하신 찬부터 글까지 너무 멋지세요.
  • 쿠켕 2015/02/10 21:56 #

    비겁한 변명일 뿐이에요. 더 노력해야죠 :-)
  • 할아 2015/02/10 17:53 # 답글

    넘 멋지시네요ㅠㅠ 오래오래 행복하셔요!!
  • 쿠켕 2015/02/10 21:57 #

    그렇게 말씀하시니 부끄럽네요. 할아님도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2015/02/10 21: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0 21: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2/11 14: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2 07: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Sherlock 2015/02/11 14:33 # 답글

    어머 감동이네요 ㅠㅠㅠㅠㅠㅠㅠ 행복하셨을거예요!! 다정한 남편분이시라니!
  • 쿠켕 2015/02/12 07:42 #

    모자란 남편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 제이 2015/02/11 21:56 # 답글

    멋지십니다~ 아내분이 행복해하셨을거에요 @_@ 생일축하합니다!
  • 쿠켕 2015/02/12 07:42 #

    저도 그랬으면 싶네요~ 감사합니다 :-)
  • 2015/02/12 10: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2 12: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밥과술 2015/02/13 14:47 # 답글

    축하드립니다. 지금도 행복해보이지만, 계속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 2017/08/02 19:0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쿠켕 2017/08/03 08:48 #

    참 별 생각들이 들락날락거리는 날들입니다.
    힘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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