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요리대결 外 집에서 먹기



긴 연휴만큼이나 참 오래도 포스팅을 쉬었습니다. 간혹 들여다 봐주시는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직 이후 본업이 되다시피 한 보고서 만들기라, 야근이 이어지는 날들이면 퇴근해서까지 키보드 자판 두드릴 엄두가 나질 않네요.
단어 몇 개, 문장 표현 하나 만드느라 진을 빼고 나면 엉킨 낚싯줄마냥 머릿속 매듭이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차분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정리가 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글쓰기의 ㄱ자 조차도 걸음마 수준으로는 욕심일 뿐이겠죠. 그렇게 내팽겨치기를 일주일, 지난 연휴간은 멀리 고향에서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꼬물꼬물 소꿉장난식으로 해왔던 요리도 세월이 흐르니 내공이란게 조금은 쌓였는지 차례상에 올릴 전과 부침개를 도맡아 구웠네요. 녹두전 레시피를 조금 바꿔보기도 하고 바삭한 튀김 비법을 전수해 주기도 하구요. 맛있는 음식을 굳이 맛없게 식혀 먹는 차례상의 의미가 무엇인가 고민도 해봤지만 집안의 분란만 불러올 뿐.....그런 얘기는 참 조심해야 할 필요성은 있습니다만 ㅋ

사실 금쪽같은 휴일을 가장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많은 세상인데 차례상 때문에 모든 옵션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죠. 명절로 인한 가족간의 불화....고부갈등 같은것을 생각하면(합리적인 성향의 부모님에 크게 격식을 따지지 않는 집안인지라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만) '과연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라는 근본적인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맛있게 만들어 차갑게 식어버린 값비싼 식재료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입니다.

세대가 이어진 이후 다시 걱정하면 될 일이겠죠. 하지만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젊으실 때 좋은 구경도 하고 편한 마음으로 명절도 지내고 하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쓸데없는 소리가 너무 길었네요. 기억을 되살려 시계를 한 달쯤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여느 집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닌 듯 싶은 부부 요리대결 얘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냉장고 속 단호박으로 아침 메뉴를 찍었는데, 호박죽을 만들겠다는 와이프와 단호박 스프를 만들겠다는 제 의견이 좁혀지지 않습니다.

쿠 : 그럼, 각자 요리해서 승부 함 보까?
아내 : 오케이, 심판은 찬이가 보기로 하고 저녁메뉴 선택권이랑 설겆이 걸고 콜?
쿠 : 하늘이 두쪽나도 심판말에 복종하기!

그렇게 해서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꼬맹이 입맛이야 투명한 유리구슬마냥 뻔한지라 제가 이길 확률이 90% 정도로 자신했었는데 막상 대결이라 생각하니 긴장도 좀 되고 묘한 기분인 것이 우습더군요.

출발은 모두 전자렌지로 단호박 삶기. 그 이후로는 제 메뉴에만 신경쓰느라 뭘 하는지는 잘 못봤네요.

고소한 맛을 내줄 양파에 그윽한 단맛의 배를 사용하려 했으나 사과밖에 없는 관계로 양파와 사과를 버터에 볶았습니다. 충분히 볶은 후에 우유를 붓고 끓이다 삶은 단호박과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넣고 블렌더로 곱게 갈아 완성. 그 와중에 비주얼 점수 좀 얻어보겠다고 크루통까지 구웠네요. 올리브유 살짝 더하고 후추랑 크루통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중간에 흘끗 컨닝을 좀 했더니만 아뿔싸 와이프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었네요. 찹쌀가루 반죽으로 못난이 새알을.... 그것 역시 꼬맹이가 환장하는 아이템이라 승부를 예측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치즈와 크루통이 있으니 느긋한 마음으로 심사를 지켜봅니다.

찬 : 음....둘 다 뭔가 아주 약간 아쉬운 것 같긴 한데......엄마꺼는 95점에 새알이 들어있어서 보너스 점수 3점 더해서 98점, 아빠는 (이유 설명은 없음) 99점으로 아빠의 승리~
아내 : 야 왜 아빠는 99점인데?
찬 : 생각해보니 비주얼이 좋은듯.
아내 : 어이없네 맛을 보고 골라야지.
찬 : 단호박죽에는 원래 팥이 좀 들어가야되지 않나? 어쩐지 뭔가 부족하다 했더니....

아주 흡족한 심사평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해봅니다.

투박한 질감의 새알과 단호박 맛을 잘 살린 단호박죽도 좋았구요, 역시 크루통을 곁들여 질감의 대조를 살리고 여러 재료의 Complex한 Flavor를 내뿜는 제 단호박 스프가 맛 측면에서는 압도적.....

농담인거 아시죠? :-)




우리집 김치볶음밥입니다. 진짜 노메이컵, 쌩얼 그대로네요.

아마 꼬맹이가 없었는지 계란도 두 개 뿐인데, 부부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전 김치볶음밥엔 단연 써니 사이드업으로 다른 버전의 계란은 전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살충제와 식중독의 위험에서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와이프의 계란은 그냥 완숙 계란 부침이죠.

만약 꼬맹이가 껴있었다....하는 날엔 제 계란의 노른자도 가차없이 터트려집니다. 꼬맹이도 반숙을 워낙 좋아하는데 저만 그렇게 먹는 걸 용납 못하거든요. 요즘 같은 시기에 어린 녀석에게 반숙 계란을 먹일 수는 없다는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됩니다.

또 한가지의 차이점이 있다면 계란에 후추를 뿌리는지 여부에요. 와이프는 계란 후라이에 후추는 완전 안어울린다고 자기꺼엔 절대 뿌리지 말라는데....계란 후라이에 후추 뿌리는게 좋은 제가 이상한가요? 

만약에 비엔나 소세지가 어중간하게 세 개쯤 남았다 하면 김치볶음밥에 넣으면 딱 적당한 양입니다. 소세지 야채볶음 같은 걸 했다가는 열댓개도 그냥 없어지는데 소세지 절약형 메뉴랄까요. 조금만 넣어도 김볶 퀄리티가 확 좋아집니다. 스팸도 맛있긴 하지만 한번 따면 다 먹기엔 많고 보관하기도 찜찜하니깐요.

무엇보다도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만드려면, 반!드!시! 꼬두밥을 써야한다는 건 뭐 당연한 얘기니 넘어가겠습니다.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딱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질척한 김치볶음밥이 아니겠습니꽈아아악.





몇 년전부터 와이프가 노래를 부르고 타령을 하던 에어프라이기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가격이 무려 배춧잎 스무장이나 하는 고가의 제품입니다만, 이게 활용도가 꽤 쏠쏠하네요. 전자레인지는 밥 데울 때 말고는 쓰임새가 사라질 정도에요.

기름 한 방울 안 더해도 감자튀김이나 냉동 김말이 같은 건 정말 기가 막히게 튀겨냅니다. 기름에 튀긴게 100점이라 치면 85점 정도?

식어빠진 돈까스도 에어프라이기에 넣었다 빼기만 하면 거짓말 안 보태고 75% 정도까지 컨디션이 올라옵니다. 식었을 때가 20점이라 치면 전자레인지에 데웠을 때 35점 정도라 생각하는데 이건 정말 혁명적인 발명품이네요.

인천 모래네 시장에 가면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 운영하는 돈까스집이 있는데요, 가격은 7장에 만원이고 원하면 튀겨 주기도 합니다. 저야 튀김 따위 두려워 하지 않는 돼지 상남자입니다만, 와이프는 청소부담과 처리하기 힘든 기름 때문인지 튀겨가자 하네요.

가격이 가격인지라....재료에 비해 튀김옷이 좀 두껍긴 합니다만 집에서 만드는 것 보다 훨씬 비용도 싸고, 부엌일 덜어주는 걸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꾸벅 ..)


여튼...그렇게 해서 탄생된 가츠카레 되겠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소개했지만 저희집 카레도 맛있습니다. 주로 한우 사태를 가지고 만드는데, 가람마살라도 추가하고 토마토 통조림으로 약간의 산미도 더해서 풍미가 좋아요. 아빠표 카레 컨테스트 같은거 하면 한번 도전을 ㅎㅎ




덧글

  • 올시즌 2017/10/11 13:57 # 답글

    노른자는 역시 반숙이!!
  • 쿠켕 2017/10/13 08:57 #

    진리의 반숙이죠!
  • 알렉세이 2017/10/11 19:23 # 답글

    에어프라이어 쓰임새가 참 다양하더만요. 추석때 먹고 남은 전 데울때도 최고~
  • 쿠켕 2017/10/13 08:57 #

    생각보다는 잘 써먹고 있습니다 :-)
  • 英君 2017/10/13 14:02 # 답글

    정보에 어두워서인지 에어프라이어라는 것은 처음 들어봅니다. @ㅁ@
    맛 좋게 데워지는 데다가 기름도 많이 안 쓰니 건강에도 좋겠네요!
    단호박 스프와 호박죽으로 요리대결을 펼치시다니.. 두 분 다 정말 요리 실력이 훌륭하신 듯! ^ㅁ^
  • 쿠켕 2017/10/17 08:40 #

    빨래 건조기가 생활 가전의 혁명이라면, 부엌에선 단연 에어프라이기입니다!
    식은 음식을 마법과 같이 되살려줘요. 가격은 좀 나가지만 전자레인지 이상으로 활용도가 좋더라구요.
  • 밥과술 2017/10/16 18:30 # 답글

    호박죽하고 단호박스프하고 대결은 승부가 정해진 불공평게임 아닌가요??? 심판의 외교적 배려가 없었으면 엄청 격차가 벌어졌을텐데 말이죠 ㅋㅋㅋ
    조개죽하고 클램차우더하고 만큼 유불리가 정해진 메뉴라 생각합니다.

    에어프라이 저희도 살까 봐요. 고민해 보겠습니다.
  • 쿠켕 2017/10/17 08:44 #

    편파적인 심판에 대한 은근한 기대가 있긴 했습니다 ^^;
    에어프라이기 한번 들여보세요. 빨래 건조기가 멀쩡한 빨래 건조대를 퇴출시키고 있는 세상인데, 부엌에선 전자레인지를 밀어낼 만큼 쓰임새가 좋네요. 설겆이가 좀 귀찮긴 합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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